남은 자
Meaning and description
성경에서 '남은 자'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집단 가운데서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 특히 전쟁이나 심판, 포로와 재난을 겪은 뒤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선지서에서는 이 표현이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많은 사람이 멸망하거나 흩어지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일부를 보존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백성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흔히 '남은 자(remnant)'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의 '남은 자'는 문맥에 따라 다음 두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
- 단순히 어떤 사건 이후 살아남거나 남아 있는 사람들
-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보존되고 회복되는 하나님의 백성
● 일반적인 의미의 남은 자
사사기 7장 3절에서 기드온의 군대 가운데 두려워 돌아간 사람들이 22,000명이었고 "남은 자가 10,000명"이었다. 여기서 남은 자는 특별한 신학적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던 사람들을 뜻한다.
열왕기상 20장 30절에서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아벡으로 도망한 사람들을 '남은 자'라고 부른다. 역대하 36장 20절에서도 예루살렘 멸망 때 "칼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고 기록한다.
따라서 '남은 자'라는 표현 자체가 언제나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문맥에서 단순한 생존자나 나머지를 뜻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 심판과 남은 자
구약의 선지서에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남은 자’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했을 때, 선지자들은 전쟁과 포로와 멸망이라는 심판을 경고했다. 그러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가운데서도 일부를 남겨 두시고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10장 20-22절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남은 자'에는 히브리어 שְׁאָר(šĕʾār, 셰아르)가 사용되며, '남은 것', '남은 무리'를 뜻한다.
그리고 그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억압하던 자를 의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사야에서 남은 자는 단순히 우연히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심판을 지나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나타난다.
● 남은 자와 회복
남은 자 사상에는 심판뿐 아니라 회복이라는 의미도 중요하게 나타난다.
예레미야 31장 7절은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라고 말한다. 여기서 ‘남은 자’에 사용된 히브리어 שְׁאֵרִית(šĕʾērît, 셰에리트)는 ‘남은 것’, ‘남아 있는 무리’를 뜻한다.
미가 2장 12절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양 떼처럼 한곳에 모으겠다고 말씀하신다.
스바냐 2장 7절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다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을 말하며, 스바냐 3장 13절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악을 행하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평안히 거하게 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이처럼 선지서에서 남은 자는 단순히 심판과 멸망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모으고, 구원하며, 회복시켜 자신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대상으로 나타난다.
●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옴
선지서에서 남은 자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사야 10장 21절은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로 앞 20절에서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을 억압하던 자를 의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게 된다고 묘사된다.
따라서 이사야에서 남은 자는 단순히 심판 이후 살아남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판을 지나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그분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나타난다.
● 남은 자와 하나님의 은혜
신약에서 바울은 구약의 남은 자 개념을 이스라엘에 관한 논의에 사용한다.
로마서 9장 27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남은 자’는 헬라어 ὑπόλειμμα(hypoleimma, 휘폴레임마)로, ‘남겨진 것’, ‘남아 있는 무리’를 뜻한다.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점을 설명한다.
로마서 11장 5절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여기서 ‘남은 자’는 헬라어 λεῖμμα(leimma, 레임마)로, ‘남겨진 것’, ‘남은 무리’를 뜻한다.
바울은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을 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뒤(로마서 11:2-4), 자신의 시대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로마서에서 남은 자는 자신의 공로나 숫자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 모든 ‘남은 자’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신약에서 ‘남은 자’라고 번역된 표현이 모두 구약 선지서의 신학적인 ‘남은 자’ 개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의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는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남아 있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περιλειπόμενοι(perileipomenoi, 페릴레이포메노이)는 περιλείπω(perileipō, 페릴레이포)에서 나온 말로, ‘남아 있다’, ‘살아서 남아 있다’를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선지서의 ‘남은 자’ 사상이라기보다 주의 강림 때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1장 13절의 “남은 자들”에는 헬라어 λοιπός(loipos, 로이포스) 계열의 표현이 사용된다. 지진으로 7천 명이 죽은 뒤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하므로, 여기서는 재난에서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뜻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서도 λοιπός(loipos)가 사용되며, 원문은 “그 여자의 자손 가운데 나머지”라는 뜻이다. 이 단어 자체는 일반적으로 ‘나머지’, ‘그 밖의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본문은 이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어휘 자체만으로 구약의 ‘남은 자’와 동일한 전문용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맥상 하나님께 충성하는 백성을 가리키므로 구약의 남은 자 사상과 비교하여 이해할 여지는 있다.
● 심판과 은혜
선지서에서 신학적 의미의 남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가 함께 나타나는 개념이다.
한편으로 남은 자는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는 가운데 일부만 남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사야 10장 22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보존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모으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며 회복시키신다.
따라서 선지서에서 남은 자는 단순히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판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을 보존하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보여 주는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난다.
● 결론
성경에서 남은 자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집단 가운데 살아남거나 남아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선지서에서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보존되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복되는 백성을 가리키는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신약에서도 바울은 이 개념을 이어받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한다(로마서 11:5).
따라서 신학적 의미의 남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보존되고, 그분의 은혜로 다시 돌아와 회복되는 백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