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같은 제사장
의미 및 설명
성경에서 ‘왕 같은 제사장’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 쓴 표현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다스림에 참여하며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도록 세워진 공동체의 정체성을 뜻한다. 개인의 특권보다 공동체 전체의 소명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구약에서 이 표현의 배경은 출애굽기 19장 6절의 ‘제사장 나라’, 곧 히브리어 מַמְלֶכֶת כֹּהֲנִים(mamleket kōhănîm, 맘레케트 코하님)이다. 직역하면 ‘제사장들의 나라’로, 백성 전체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섬기는 나라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기 전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출애굽기 19:5-6). 이는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나타내는 백성으로 부름받았음을 보여 준다. 실제 성막 제사는 아론 자손에게 맡겨졌지만 백성 전체를 향한 이 부르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사야는 회복된 백성이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이사야 61:6).
신약에서 베드로가 쓴 βασίλειον ἱεράτευμα(basileion hierateuma, 바실레이온 히에라튜마)는 출애굽기 19장 6절의 칠십인역(헬라어 구약) 표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βασίλειον은 ‘왕의’, ‘왕다운’이라는 형용사로도, ‘왕궁’, ‘왕국’이라는 명사로도 읽을 수 있고, ἱεράτευμα는 제사장 한 사람이 아니라 ‘제사장 무리’를 뜻하는 집합명사이다.
신약에서 베드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하고, 그 목적을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밝힌다(베드로전서 2:9). 바로 앞에서는 성도들이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한다(베드로전서 2:5). 요한계시록도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일을 찬양하며(요한계시록 1:6), 그들이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한다(요한계시록 5:10, 20:6). 신약이 말하는 신령한 제사는 자기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삶과(로마서 12:1), 찬송과 선행과 나눔이다(히브리서 13:15-16).
종교개혁자들은 이 본문들을 근거로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간다는 ‘만인제사장’을 강조했다. 다만 이것이 교회 안의 직분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전통마다 이해가 다르다.
따라서 성경에서 ‘왕 같은 제사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지닌 정체성과 사명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제사장 나라’의 부르심으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그 부르심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이루어져, 성도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그분의 덕을 세상에 선포하는 공동체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