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례
Meaning and description
성경에서 ‘규례’는 삶의 기준으로 삼아 일정하게 지켜야 할 법과 명령, 제도와 규칙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명령과 제사(의식)의 질서를 가리킬 때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 재판의 기준, 왕이 세운 법령, 민족의 전통적 관습, 또는 신앙 공동체가 정한 규칙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경의 '규례'는 하나의 의미로만 한정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한 언약적 명령을 뜻하고, 어떤 경우에는 특정 의식의 구체적 절차를 뜻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재판의 기준이나 사람이 만든 관습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규례'는 문맥에 따라 여러 히브리어로 나타난다. חֹק(ḥōq, 호크)과 חֻקָּה(ḥuqqāh, 훅카)는 ‘정해진 것’, ‘법령’, ‘규정’, ‘지켜야 할 규칙’을 뜻한다. 출애굽기 12장에서 구원의 날인 유월절과 무교절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로 삼으라는 말씀이 이 단어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출애굽기 12:14, 17, 24). 여기서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구원을 대대로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절기와 예식의 명령이다.
레위기에서 '규례'는 제사와 정결 예식의 절차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다만 제사의 세부 절차를 설명하는 문맥에서는 원어가 훅카(חֻקָּה, ḥuqqāh)가 아닌, ‘가르침’, ‘지침’, ‘법’을 뜻하는 토라(תּוֹרָה, tôrāh)로 쓰이기도 한다. 실실적으로 개역개정 성경은 레위기 6장 9절(“번제의 법”), 6장 14절(“소제의 법”), 6장 25절(“속죄제의 법”), 7장 1절(“속건제의 법”)처럼 제사 절차를 규정할 때 이를 주로 ‘법’으로 번역했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의 ‘법(규례)’은 제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행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제의적 지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레위기에는 “영원한 규례”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레위기 3:17)을 비롯하여 제사장의 직무와 정결 규정, 속죄일 규례(레위기 16:29, 31, 34), 그리고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 규정(레위기 23:14, 21, 31, 41) 등은 이스라엘이 대대로 지켜야 할 제사와 거룩의 질서로 제시된다. 여기서 규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제사 제도와 일상생활 속에서 이방 민족과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명령이다.
'규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주어진 생활 명령을 뜻하기도 한다. 레위기 18장 4-5절은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고 말하며,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한다. 레위기 20장 8절도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규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주어진 언약적 명령이다.
신명기에서는 '규례'가 '법도'와 함께 자주 사용된다. “규례와 법도”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해야 할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리킨다(신명기 4:1, 5:1, 6:1). 이 규례들은 이스라엘의 지혜와 지식으로 제시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을 누리며 살도록 주어진 명령이다(신명기 4:6, 6:24).
구약에서 '규례'는 히브리어 מִשְׁפָּט(mišpāṭ, 미슈파트)와도 깊은 연관을 지닌다. 이 단어는 ‘판결’, ‘법도’, ‘정의로운 판단’, ‘재판 규정’ 등을 뜻한다. 예를 들어 민수기 27장 11절과 35장 29절에 등장하는 "판결의 규례"는 공동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과 법적 판결의 기준을 명시한 것이다. 또한 시편 119편에서 신앙 고백으로 반복되는 "주의 규례" 역시 성도가 삶에서 따라야 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과 절대적인 말씀의 기준을 의미한다.
그러나 '규례'가 항상 하나님의 선한 명령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레위기 18장 3절은 애굽 땅의 풍속과 가나안 땅의 규례를 따르지 말라고 말한다. 열왕기하 17장 8절과 에스겔 11장 12절도 이방 사람들의 규례를 따른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한다. 이 경우 규례는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아니라, 이방 민족의 관습이나 우상숭배적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역사서에서 ‘규례’는 공동체가 지속해서 지켜온 정해진 관례나 국가적 제도를 뜻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사무엘상 30장 25절에서 다윗은 전투에 참전한 자와 소유물 곁에 머문 자들에게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 원칙을 세우고, 이를 이스라엘의 영구적인 율례와 규례로 삼았다. 또한 에스더 1장 13절과 2장 12절에서는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왕실 법률과 처녀가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치러야 하는 공식적인 궁중 절차가 규례로 표현된다. 나아가 다니엘 6장 8절과 15절에서는 결코 변개할 수 없는 ‘메대와 바사의 규례’가 등장하는데, 이는 왕의 도장이 찍힌 국가적 법령이자 한시적인 제도적 명령을 가리킨다.
신약에서 '규례'도 문맥에 따라 여러 헬라어로 나타난다. 누가복음 1장 6절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여기서 규례는 δικαίωμα(dikaiōma, 디카이오마)와 관련되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로운 명령이나 법적 요구를 뜻한다.
사도행전 6장 14절에서 사람들은 스데반이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말했다고 고발한다. 여기서 규례는 ἔθος(ethos, 에토스)와 관련되며, ‘관습’, ‘전통’, ‘풍습’을 뜻한다. 이 구절의 규례는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특정 법조항만이 아니라,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대인의 관습과 생활 질서를 포함한다.
사도행전 16장 4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여러 교회에 전해 지키게 한다. 여기서 규례는 δόγμα(dogma, 도그마)와 관련되며, ‘결정’, ‘명령’, ‘공식적으로 정한 규정’을 뜻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복음 안에서 질서와 일치를 위해 받아들인 결정 사항을 가리킨다.
로마서 2장 26절에서 바울은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규례’로 번역된 헬라어는 δικαίωμα(dikaiōma, 디카이오마)로, 율법이 지향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가리킨다. 즉, 바울은 할례라는 외적인 표지 자체보다,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의 뜻에 실제로 순종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6장 16절의 '규례'는 κανών(kanōn, 카논)과 관련되며, '기준', '원칙', '규범'을 뜻한다. 여기서 규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중요하다는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의 기준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장 20절의 "규례에 순종하느냐"는 δογματίζομαι(dogmatizomai, 도그마티조마이)와 관련되며, 사람이 만든 종교적 규정이나 금욕적 명령에 얽매이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죽은 성도가 사람의 규례에 종처럼 매여 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신약 성경은 구약의 의식적 규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과거 이스라엘의 예배 질서에서 핵심적이었던 제사, 정결, 음식, 절기 등의 규례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그 본래의 목적을 완성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외적인 의식 규례를 통해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거룩한 삶의 기준 자체가 사라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약의 성도는 사람의 전통이나 형식적 규정에 얽매여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지 않을 뿐,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성경에 등장하는 '규례'는 문맥에 따라 다각도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따를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와 복음의 기준일 수도 있고, 구약 공동체에 한시적으로 주어졌던 예식의 절차나 재판의 기준일 수도 있다. 또한 유대인의 고유한 관습이나 초대교회 공동체의 실제적 결정을 뜻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더 이상 매이지 말아야 할 사람의 종교적 규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맥락 속에서 이 규례들의 진의를 올바르게 분별하여 해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