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Meaning and description
‘순례자’는 성경에 직접 나오는 단어라기보다, 거룩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이 세상을 지나가는 길로 여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신자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쓰는 신앙의 표현이다. 개역개정은 같은 내용을 주로 ‘나그네’, ‘거류민’, ‘외국인’으로 표현한다.
구약에서 이와 관련된 히브리어는 גֵּר(gēr, 게르)와 תּוֹשָׁב(tôšāb, 토샤브)이다. גֵּר는 자기 땅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러 사는 ‘나그네’, ‘거류민’을, תּוֹשָׁב는 남의 땅에 기대어 사는 ‘동거인’, ‘객’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라고 말했고(창세기 23:4),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기 일생을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라고 표현했다(창세기 47:9). 율법은 땅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도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말하고(레위기 25:23), 다윗은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라고 기도한다(시편 39:12, 역대상 29:15). 또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절기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 나아가야 했는데(신명기 16:16), 시편은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노래하고(시편 84:5), 표제에 ‘올라감’이 붙은 시편 120-134편은 흔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노래로 이해된다.
신약에서는 ‘잠시 머무는 나그네’를 뜻하는 헬라어 παρεπίδημος(parepidēmos, 파레피데모스), ‘곁에 사는 거류민’을 뜻하는 πάροικος(paroikos, 파로이코스), ‘외국인’, ‘낯선 사람’을 뜻하는 ξένος(xenos, 크세노스)가 이 개념을 표현한다.
신약에서 히브리서는 믿음의 조상들이 약속을 멀리서 보고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말하며(히브리서 11:13), 그들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히브리서 11:16). 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하여 성도의 삶을 순례의 길로 그린다(히브리서 13:14).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르고(베드로전서 1:1),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한다(베드로전서 2:11).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말한다(빌립보서 3:20). 그러나 이 정체성은 세상을 등지라는 뜻이 아니어서, 베드로는 이방인 가운데서 행실을 선하게 하라고 이어서 권한다(베드로전서 2:12).
따라서 ‘순례자’는 성경이 ‘나그네’와 ‘거류민’이라는 말로 그려 온 신자의 정체성, 곧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조상들의 나그네 길과 시온을 향한 절기 순례로, 신약에서는 하늘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