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형체
의미 및 설명
성경에서 ‘종의 형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신 낮아지심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말은 개역개정에서 빌립보서 2장 7절에만 나오지만, 성육신에서 십자가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요약하는 핵심 표현으로 쓰인다.
구약에는 이 표현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배경으로 이사야서의 ‘여호와의 종’이 자주 언급된다. ‘종’은 히브리어 עֶבֶד(ʿebed, 에베드)로, 주인에게 속하여 섬기는 사람을 뜻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붙는 영예로운 칭호이기도 하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세워 이방에 정의를 베풀게 하시겠다고 하시고(이사야 42:1), 그 종이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고 하신다(이사야 52:13). 그러나 그 종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고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며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한다(이사야 53:12). 낮아짐과 높아짐이 함께 나타나는 이 종의 모습은 빌립보서 2장과 자주 비교된다.
신약에서 ‘종의 형체’는 헬라어 μορφὴ δούλου(morphē doulou, 모르페 둘루)이다. μορφή(morphē, 모르페)는 ‘형체, 모습’을, δοῦλος(doulos, 둘로스)는 ‘종, 노예’를 뜻한다. 바로 앞 절의 ‘하나님의 본체’도 같은 μορφή를 써서 ἐν μορφῇ θεοῦ로 표현되어(빌립보서 2:6), 두 ‘형체’가 의도적으로 대조된다.
바울은 성도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권하며(빌립보서 2:5),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한다(빌립보서 2:7). 여기서 ‘비우다’(κενόω, kenoō, 케노오)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오래 논의되어 왔다. 전통적인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종의 형체를 가지심 곧 종의 자리를 취하심으로 자기를 비우셨다고 이해한다. 그 낮아지심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데까지 이르렀고(빌립보서 2:8),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빌립보서 2:9-10). 이 마지막 표현은 이사야 45장 23절의 말씀을 반영한다.
복음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고(마태복음 20:28),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서로 섬기라고 가르치셨다(요한복음 13:14).
따라서 성경에서 ‘종의 형체’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종의 자리에서 순종하신 낮아지심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고난받고 높아지는 여호와의 종이 예고되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그 길을 이루셨으며, 성도에게도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섬기라고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