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testamental Period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 400년

구약 시대가 끝나고 신약 시대가 시작되기까지는 약 400년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 땅을 다스리는 나라가 여러 차례 바뀌었고,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회당과 공회 같은 제도도 점차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 별다른 설명 없이 등장하는 여러 인물과 제도,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이 400년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기간을 흔히 '400년의 침묵기'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침묵'은 구약의 예언서가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거나, 아무런 문헌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도 유대인들은 다양한 묵시 문학과 지혜 문학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시대에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인식했습니다. 마카비상 9:27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게 된 날 이후'라고 기록하고, 4:46과 14:41도 '선지자가 올 때까지'라고 말합니다. 즉, 당시 사람들 역시 선지자의 부재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외경·제2정경

아래의 연도는 이해를 돕기 위한 대략적인 B.C. 기준입니다. 세부 연대는 자료와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말라기 B.C. 400경 구약의 마지막 본문 열기
약 400년 예언의 중단 · 무대의 재구성
마태복음 B.C. 4경 신약의 시작 본문 열기

누가 유대 땅을 다스렸는가?

40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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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 아람어(이미 확산 중)

신약 시대

히브리어(예배·경전) + 아람어(일상) + 코이네 헬라어(공용어)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간기부터가 아닙니다. 이미 포로기와 페르시아 시대에 아람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왕하 18:26, 에스라·다니엘의 아람어 본문). 중간기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여기에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가 더해진 것입니다. 히브리어 역시 사라지지 않고 성경과 예배의 언어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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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

신약 시대

히브리어 성경 + 70인역(Septuagint, LXX)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 늘어나면서 구약 성경도 헬라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번역을 70인역(Septuagint, LXX)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모세오경이 번역되었고, 이후 다른 책들도 차례로 번역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 헬라어 성경이 널리 사용되었으며, 신약의 구약 인용 가운데 상당수가 70인역의 표현과 가깝습니다.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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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전 중심

신약 시대

성전 + 회당(여러 지역에)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성전 없이 신앙을 유지하기 위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문헌·고고학 증거 자료가 B.C. 3세기 이후에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이 중간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신약 시대가 되었을 때 회당이 여러 지역에 세워져 있었고,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함께 기도하는 유대인의 일상적인 신앙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견해 존재

지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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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신약 시대

제사장 + 서기관(Scribes)·율법학자

서기관은 중간기에 갑자기 처음 등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에스라 역시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여 백성에게 가르치는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신약 시대에는 서기관과 율법학자가 유대 사회의 중요한 종교 지도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랍비(Rabbi)'는 당시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 사용되었으며(요 1:38),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는 A.D. 70년 성전 파괴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통치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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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자치

신약 시대

공회(산헤드린)

유대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장로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간기에는 장로들의 회의체가 '게루시아(Gerousia)'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나며, 이러한 전통이 발전하여 신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장로·서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회(Sanhedrin)가 등장합니다. 공회는 어느 한 해에 갑자기 만들어진 조직이라기보다 여러 시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형성된 통치·재판 기구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정확한 구성과 권한의 범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 견해 존재

신앙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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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 구분이 아직 뚜렷하지 않음

신약 시대

여러 분파 등장 + 메시아 대망 고조

중간기를 거치면서 유대교 안에는 율법과 성전, 정치와 이방 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집단들이 뚜렷해졌습니다. 신약에는 바리새인(Pharisees)과 사두개인(Sadducees)이 자주 등장하며, 당시에는 에세네파(Essenes)를 비롯한 다른 집단들도 존재했습니다. 동시에 외세의 지배가 계속되면서 하나님의 구원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대도 커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습의 메시아가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정체성과 메시아 되심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정체성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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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할례 등 언약의 표징

신약 시대

유대인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경계선

안식일과 할례는 중간기에 새로 생긴 관습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언약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징이었습니다(출 31:13, 겔 20:12). 그러나 중간기에는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 감수했던 박해와 순교의 기억이 더해졌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가 안식일·할례와 율법에 따른 음식 규정을 금지했고(마카비상 1:41-64), 이에 저항한 유대인들의 경험은 이러한 관습을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매우 중요한 경계선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면 신약에서 안식일과 정결 규정을 둘러싼 논쟁이 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외경·제2정경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대 집단

아래 다섯 집단은 모두 같은 성격의 '종교 분파'는 아닙니다. 바리새인·사두개인·에세네파는 주로 신앙과 율법 해석의 차이로 구분되는 집단이고, 헤롯당과 열심당은 정치적 입장과 행동 방식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집단입니다. 요세푸스(Josephus)는 바리새인·사두개인·에세네파를 유대의 대표적인 세 '철학(philosophies)'으로 소개하며, 이후 갈릴리 유다와 관련된 흐름을 '제4의 철학'으로 설명합니다.

분파 뿌리 성경관 부활·천사 정치 성향 신약 등장
바리새인 하시딤(Hasidim) 계열에서 발전했다는 견해가 널리 알려짐 기원: 여러 견해 존재 기록된 율법과 구전 전승을 함께 중시 부활·천사 인정 율법 준수와 종교적 정결을 중시 마 23장 행 23:6-8
사두개인 성전과 연결된 제사장·귀족 계층 기록된 율법을 중시하고 바리새인의 구전 전승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 정경 범위: 여러 견해 존재 부활·천사 부인 성전 체제 유지, 로마 권력과 현실적으로 협력 막 12:18 행 23:8
에세네파 주류 사회와 거리를 둔 분리주의적 공동체 엄격한 율법 준수와 정결, 종말에 대한 강한 기대 영혼의 불멸과 내세를 믿었다고 전해짐(요세푸스) 성전 지도층과 세속 권력에서 거리를 둠 신약에 직접 언급 없음 쿰란 관계: 유력한 추정
열심당 로마 지배에 저항하던 반로마 운동의 흐름 로마 지배를 거부하고 정치적 독립을 추구 눅 6:15 셀롯의 의미: 여러 견해 존재
헤롯당 헤롯 왕조를 지지한 정치적 세력 헤롯 왕조와 로마 질서에 현실적으로 협력 막 3:6 막 12:13

이 집단들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A.D. 37~100경)의 기록에 크게 의존합니다. 그는 유대의 여러 분파를 그리스·로마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철학 학파'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그의 기록은 당시 유대 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지만, 한 저자가 특정 시대와 독자를 향해 남긴 기록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의 무대

사마리아인과 그리심 산

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가까이하지 않았을까요?

  •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모두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올바르게 이어가고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예배의 중심지가 어디인가를 두고 크게 갈라졌습니다.
  •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유일한 중심 성소로 여긴 반면,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Mount Gerizim)을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장소로 여겼습니다.
  • 이러한 종교적 대립에 정치적 충돌까지 겹쳤습니다. 하스몬 통치자 요한 힐카누스 1세(John Hyrcanus I)는 B.C. 2세기 후반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성소를 파괴했습니다.
  • 오랜 종교적·정치적 갈등이 쌓이면서 두 공동체의 관계는 깊이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를 다른 공동체로 여기며 경계하는 상황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경 본문 역사 자료 여러 견해 존재

신약 접점

요 4:9, 4:20 눅 10:33

그리심 산 성전의 정확한 파괴 연대에는 견해차가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바탕으로 B.C. 128년경으로 보기도 하고,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B.C. 110년경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만 요한 힐카누스가 성전을 파괴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됩니다.

헤롯 대왕과 헤롯 성전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크게 확장한 제2성전입니다.

  •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아버지 안티파테르(Antipater)는 하스몬 왕가의 힐카누스 2세를 보좌한 이두매(Idumea) 출신의 유력자였습니다.
  • 헤롯은 B.C. 20/19년경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확장했습니다. 새로운 성전을 따로 세운 것이 아니라 기존 제2성전을 크게 확장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제2성전의 연속으로 봅니다.
  • 요 2:20의 "사십육 년"은 성전이 완공되는 데 걸린 기간이 아니라, 당시까지 공사가 계속된 기간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사역 당시에도 성전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으며, 전체 공사는 A.D. 60년대에야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뒤인 A.D. 70년 로마군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성경 본문 역사 자료

신약 접점

요 2:20 눅 1:5

헤롯이 자신의 왕권에 매우 민감했던 역사적 정황과 연결해 마태복음 2장을 이해하는 견해가 널리 소개됩니다. 다만 마태복음 2장 자체는 헤롯의 혈통이나 출신을 그 행동의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이려 한 행동은 왕위를 위협하는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헤롯의 권력 방어라는 맥락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 2장 해석: 여러 견해 존재

로마의 통치 구조

왜 복음서에는 로마 총독과 헤롯 가문의 통치자 및 세금 문제가 함께 등장할까요?

  • 헤롯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영토는 아들들에게 나뉘었습니다. 유대·사마리아·이두매는 아켈라오(Archelaus)가 갈릴리와 페레아(Perea, 요단강 동편)는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가 다스렸습니다.
  • 아켈라오는 A.D. 6년에 폐위되었고, 이후 유대 지역은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장의 아켈라오와 누가복음 3장의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같은 유대 지역과 관련되지만 서로 다른 시대의 통치자입니다.
  • 반면 갈릴리에는 헤롯 가문의 통치가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역 당시에는 로마 총독과 헤롯 가문의 분봉 통치자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로마의 지배를 인정할 것인가라는 정치적·종교적 의미까지 가진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성경 본문 역사 자료

신약 접점

눅 3:1 마 2:22 마 22:17

눅 2:2에 기록된 구레뇨(Quirinius)와 호적 조사의 연대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페이지에서는 해당 본문을 당시 로마의 행정적 배경을 보여 주는 자료로 참고하되, 특정 연대를 확정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 이렇게 만납니다

수전절(하누카)

요한복음 10:22에 나오는 '수전절'은 B.C. 164년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 과정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아 정결하게 하고 다시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누카(Hanukkah)라고 부릅니다. 중간기 역사를 알면 신약에 짧게 등장하는 이 절기의 역사적 배경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 외경·제2정경

요 10:22

마카비서는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당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 자료로 인용합니다. 같은 시대의 사건들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12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문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가와 그 문헌을 역사 자료로 참고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당

신약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여러 지역의 회당에서도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기도하는 모임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회당을 중요한 사역의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성경 본문

눅 4:16 행 15:21

공회(산헤드린)

신약에 등장하는 공회(Sanhedrin)는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 등이 참여한 유대 지도자들의 회의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재판과 초대교회에 대한 심문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경 본문

막 14:55

바리새인·사두개인

바리새인(Pharisees)과 사두개인(Sadducees)은 율법과 전승, 부활과 천사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유대 집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알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여러 논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

마 22:23-34

헬라어·디아스포라

알렉산더 시대 이후 헬라어가 널리 퍼졌고,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밖의 여러 도시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Diaspora)와 공용어인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는 훗날 복음이 지중해 세계로 빠르게 전해질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성경 본문

요 7:35 행 6:1

사마리아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예배 장소와 공동체의 정통성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을 찾아가거나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시키는 장면은 당시 사람들에게 더욱 강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성경 본문

요 4:9

로마 통치·헤롯 왕가

신약의 유대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지역에 따라 로마 총독과 헤롯 왕가의 통치자가 함께 존재했습니다. 이 배경을 알면 빌라도, 헤롯, 분봉왕, 세금과 같은 표현이 왜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지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성경 본문

눅 3:1 눅 1:5

침묵이 끝나는 지점

오랜 예언의 침묵이 끝나고, 신약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성전에서 향을 피우던 제사장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 세례 요한의 탄생을 알렸고(눅 1:8-13), 이후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했습니다(눅 1:67). 성전에서는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으며(눅 2:36),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눅 3:2).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약 400년 동안 역사와 문화, 언어와 제도가 변화하며 신약의 무대가 준비되었고, 이제 그 무대 위에서 복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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