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부음
의미 및 설명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본래 사람이나 물건에 기름을 바르거나 붓는 행위를 뜻한다. 구약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거나 특정한 직분과 사명에 세우는 표지로 사용되었다.
구약의 대표적인 동사는 마샤흐(מָשַׁח, māšaḥ)로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를 뜻한다. 여기에서 미쉬하(מִשְׁחָה, mišḥāh)와 마시아흐(מָשִׁיחַ, māšîaḥ)가 파생되었다. 미쉬하는 문맥에 따라 ‘기름 부음’, ‘관유’, 또는 ‘구별된 몫’을 뜻하며, 마시아흐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한다.
신약에서는 ‘기름을 붓다’를 뜻하는 크리오(χρίω, chriō), ‘기름 부음’을 뜻하는 크리스마(χρῖσμα, chrisma),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Christos)가 사용된다.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마시아흐에 대응하며, 신약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리스도’라는 칭호로 사용된다.
구약
구약에서 기름 부음은 사람이나 물건을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성막과 그 기구 및 제단은 기름 부음을 받아 거룩하게 구별되었으며(출애굽기 30:26-29; 40:9-11),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았다(출애굽기 29:29; 40:13-15; 민수기 3:3).
특히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된 자로 표현되며, 그의 직분과 제사법적 책임은 기름 부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레위기 4:3, 5, 16; 6:20, 22; 16:32; 민수기 35:25).
왕도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로 구별되었다. 사울과 다윗 등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불렸으며(사무엘상 12:3, 5; 24:6, 10; 26:9, 11, 16, 23), 다윗 자신도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묘사된다(사무엘하 3:39; 23:1). 시편에서도 왕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부른다(시편 2:2; 18:50; 20:6; 28:8; 89:38, 51; 132:10, 17).
이러한 기름 부음은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죄가 없거나 그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직분과 사명을 맡겨 세우셨음을 나타내는 표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구약의 마시아흐(מָשִׁיחַ)는 처음부터 언제나 장차 오실 한 분의 메시아만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는 아니었다. 실제로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과 왕을 가리키며, 하나님께 특별한 역사적 사명을 받은 바사 왕 고레스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불린다(레위기 4:3; 사무엘상 24:6; 이사야 45:1). 따라서 각 본문에서 마시아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먼저 문맥에 따라 살펴야 한다.
그러나 다윗 왕조와 하나님의 왕권에 관한 약속 및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한 성경의 기대는 이후 메시아에 대한 소망과 연결되며, 신약은 그 궁극적인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사무엘하 7:12-16; 시편 2:2; 누가복음 2:11; 요한복음 1:41).
또한 한글 성경에서 ‘기름 부음’ 또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번역되었다고 해서 언제나 동일한 히브리어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스가랴 4장 14절은 문자적으로 ‘기름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다니엘 9장 24절은 마시아흐라는 명사가 아니라 마샤흐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반면 다니엘 9장 25-26절에는 실제로 마시아흐가 사용된다. 에스겔 28장 14절의 ‘기름 부음을 받은’에도 일반적인 마시아흐가 아니라 의미가 다소 불확실한 밈샤흐(מִמְשַׁח, mimšaḥ)라는 별도의 단어가 사용된다. 따라서 한글 번역만으로 모든 용례를 동일하게 분류해서는 안 된다.
신약
신약에서 기름 부음의 중심적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다. ‘기름을 붓다’를 뜻하는 크리오(χρίω)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특별한 구원 사명을 위해 세우셨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누가복음 4:18; 사도행전 4:27; 10:38). 특히 사도행전 10장 38절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셨다고 설명한다.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며 히브리어 마시아흐에 대응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본래 예수님의 성(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아임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신약은 ‘메시아’를 ‘그리스도’라고 직접 풀이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요한복음 1:41; 마태복음 16:16).
신약에서는 성도들도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것으로 표현된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기름 부으셨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동사 크리오가 사용된다.
요한일서 2장 20절과 27절에서는 ‘기름 부음’을 뜻하는 명사 크리스마(χρῖσμα)가 사용된다. 이 기름 부음은 성도들이 ‘거룩하신 자’에게 받은 것으로서 그들 안에 거하며, 진리를 알고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 기름 부음은 기독교 해석에서 일반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역사에 관련된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크리스마라는 단어 자체의 사전적 뜻이 곧 ‘성령’인 것은 아니므로, ‘기름 부음 = 성령’이라고 단순하게 동일시하기보다는 본문의 문맥에서 성령의 역사와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요한일서 2장 27절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모든 교사나 성경 가르침이 불필요하다는 뜻으로 보기 어렵다. 바로 앞에서 요한은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자들에 관해 말하고 있으며(요한일서 2:26), 성도들이 처음부터 들은 복음의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한다(요한일서 2:24, 27).
결론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기본적으로 기름을 바르거나 붓는 행위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고 특정한 직분과 사명에 세우는 것을 나타낸다.
구약에서는 성막과 기구, 제사장과 왕 등을 구별하는 데 기름 부음이 사용되었으며,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마시아흐는 제사장·왕·고레스 등 실제 역사적 인물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크리스토스, 곧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칭호가 예수님에게 집중되며, 예수님은 하나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메시아의 구원 사명을 수행하신 분으로 증언된다. 또한 성도에게 주어진 기름 부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세워지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알고 분별하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성경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선택과 구별, 직분과 사명의 위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과 관련된 중요한 성경적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