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의미 및 설명
성경에서 ‘원수’는 미워하고 해치려 하는 적대자, 곧 개인이나 민족의 대적을 뜻한다. 성경은 이 말을 사람 사이의 적대 관계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세력, 죄로 인해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놓인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는 마지막 세력인 사망에까지 넓혀 쓴다.
구약에서 ‘원수’는 주로 히브리어 אֹיֵב(ʾōyēb, 오예브)로 표현되며, ‘적대하다’를 뜻하는 동사 אָיַב(ʾāyab, 아야브)에서 나온 말이다. 이 밖에 ‘대적’으로 자주 옮겨지는 צַר(ṣar, 차르)와 ‘미워하는 자’를 뜻하는 שֹׂנֵא(śōnēʾ, 소네)도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구약에서 원수는 흔히 이스라엘과 싸우는 민족이나 군대를 가리키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편에 서서 싸우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에게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라고 약속하셨고(출애굽기 23:22), 시인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라고 고백한다(시편 23:5). 그러면서도 율법은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면 돌려주라고 명하였고(출애굽기 23:4-5), 잠언은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라고 가르친다(잠언 25:21).
신약에서 ‘원수’는 주로 헬라어 ἐχθρός(echthros, 에크트로스)로, ‘원수 됨, 적대’는 ἔχθρα(echthra, 에크트라)로 표현된다.
예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가르치셨고(마태복음 5:44), 누가복음도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누가복음 6:27). 그 앞의 “네 원수를 미워하라”(마태복음 5:43)는 구약 율법에 그대로 있는 명령이 아니라, 이웃 사랑의 계명(레위기 19:18)에 당시 사람들이 덧붙여 받아들이던 생각으로 보인다. 바울은 잠언 25:21을 인용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한다(로마서 12:20-21).
신약은 원수 됨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도 설명한다. 사람은 악한 행실로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골로새서 1:21)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로마서 5:10). 육신의 생각과 세상과 벗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다(로마서 8:7, 야고보서 4: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왕 노릇 하시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린도전서 15:25-26). 한편 베드로전서 5:8에서 마귀를 가리키는 ‘대적’은 법정의 상대편을 뜻하는 ἀντίδικος(antidikos, 안티디코스)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원수’는 사람과 민족 사이의 적대자에서 시작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까지 가리키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원수와 싸우시는 분으로 나타나는 동시에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는 가르침이 있고, 신약에서는 원수 되었던 인간을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명령과, 사망을 멸하시는 그리스도의 최종 승리가 드러난다.